이현 자서전

#2 학창시절의 이현

해머플레이스 2024. 9. 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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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초등학생 때는 이사때문에 전학을 엄청 많이 다녔는데, 초등학교가 무려 3번이나 바뀌었다.

일산 백석동에 살다가 가좌동으로 이사를 가고, 6학년 때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나는 옛날부터 여러 명과 무리 지어서 놀기보다는 둘이 붙어다는 것을 좋아해서 초중고 대부분 둘이 다녔는데, 초6 때는 같은 반 친구들 8명이서 교환일기까지 쓸 만큼 유일하게 친구가 가장 많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사를 갈 때 너무너무 슬퍼서 며칠 내내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 (ㅋㅋㅋㅋ)

 

학교에서는 착하고 귀여운 이미지라 친구들과 잘 친해지고 나름 인기도 많았다. 그리고 엄청 순진한 아이였는데 생각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10살 때 친구가 돌로 풀을 빻아서 이 약초를 방송국에 팔면 7억을 받아서 뉴스에 나올 수 있다고 했는데, 종이에 연필로 쓴 돈이 진짜 방송국용 돈인 줄 알았다. 얼마나 바보 같았냐면 먹고 싶은 걸 달라는 말을 못 해서 안 먹고, 이간질에 잘 휘말리는 착하다기보다 너무 호구 같은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가족한테는 거짓말도 많이 하고 성질도 부려서 회초리로 맞으면서 자랐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중딩

중학교 때는 공부를 아주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문제집 풀라고 시키면 해답지 보고 적어놓고, 친구랑 도서관 가서 밥 먹고 잠만 자는.. 그런 아이

그래도 나름 벼락치기로 중상위권은 유지했다. (벼락치기를 매우 잘함)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중1 때에 비해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이때부터 내 꿈은 평화롭고 재밌을 것 같고 여유로워 보이는 빵집 주인이었다. 

 

중1 때 짝으로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도 젤 친함), 엄마가 방학 때마다 그 친구랑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마냥 재밌기만 하고 영어는 하나도 안 늘고 ㅋㅋ

 

그렇게 2~3번 갔는데 마지막으로 갔을 때, 친구가 먼저 한국에 가게 되고 난 다른 사람들이랑 일주일 정도 더 남게 됐다.

그래서 친구랑 국제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진지하게 자기는 필리핀에서 유학을 할 거라고 했다. 한국에서 자기가 어떻게 꿈을 이뤄야 할지 모르겠다나 꿈이 뭔지 모르겠다나? 그러고는 진짜로 중2 말인가 중3 초에 갑자기 유학을 가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미국으로 감ㅋㅋㅋ예측 불가)

 

이제 곧 진학할 고등학교를 정해야 해서 제과제빵을 하고 싶었던 나는 특성화고를 추려봤다. 하지만 성적이 맞는 학교가 별로 없어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중3 때 정말 아득바득 공부했다.

 

40%대로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었지만 나름 내신을 엄청 올리고, 고등학교 합격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복도로 부르셨다. 엄청 무서운 선생님이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웃으시면서 붙었다고 축하해 주셨다. 그때는 정말 날아갈 뻔했다. 떨어졌다면 공포의 인문계 여고에 다니다가 꿈을 잃어갔을지도.. 친구들도 엄청 축하해 줬다!

 

번외

예비소집일 날 갔는데 화장 짱 진한 것 같은 (아이라인을 관자놀이까지) 어떤 여자애가 날 째려봐서 다음날 중학교 친구들한테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더니 너가 다 씹어먹을 거라고 해줬다. 근데 나중에 걔랑 같은 반이 돼서 알고 보니 화장한 게 아니라 쌍수해서 그래 보인 거고, 째려본 것도 아니라 친해지고 싶어서 본 거였다고 했다. 미안..

 

중3 말에는 전단지 알바를 해서 처음으로 내가 일해 직접 번 돈의 맛을 알게 되었다.

같이 전단지 알바 했던 친구


고딩

입학하게 된 학교는 구로에 있는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였다.

7개의 학과가 있었는데 조리과, 정보과, 관광과, 뷰티과, 체육과, 시각디자인과, 실용음악과였다.

첫 입학!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정말 기뻤지만 2가지 단점이 있었다.

당시 나는 종로에 살아서 학교까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로 매일 통학했다. 3년 내내 새벽 5시에 일어났고 조리과이니 칼가방도 들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처음 가는 지역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조리과 친구들이 뭔가 나랑 결이 달라 보여서 걱정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의 아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알던 친구들이랑만, 특히 같은 조리과끼리만 친하게 지내는 느낌이랄까? 혼자 다니게 될까 걱정했는데 동아리를 하게 되면서 다른 과 친구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이 소개해준 친구들도 생기고 반에서도 현지라는 친구가 생겼다.

 

현지랑은 항상 둘이 다니고 같이 알바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호정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나랑 결이 잘 맞아서 현지 아니면 호정이랑 둘이 다녔다.

고딩까지는 체력이 좋았어서 체력장 여자 오래달리기에서 수백명 중 2등했다. (1등은 체육과)


조리실에서 첫 실습을 하고 숙제로 받은 것은 무 일정하게 썰어오기였다.

그 외에 자격증을 위한 여러 실습을 하고, 집에서도 연습하고 늘어가는 실력을 보며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2학년으로 올라왔는데 담임선생님이 히스테리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화장을 하면 안 됐는데, 쌩얼로 다닐 자신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은 더 심했지만 나는 선크림, 틴트, 눈썹만 그리고 다녔다. 그런 것 외에는 인사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서 다른 선생님들께는 예쁨을 받기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유독 나를 싫어했다. 10점 만점 오믈렛 만들기에서 탄 계란말이를 만든 애한테는 6점을 주고, 완벽하게 만든 나한테는 7점을 주는 식으로 날 괴롭혔다. 나중에 생기부에도 외모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며 부정적으로 썼다. (다른 친구들도 왜 너한테만 그러냐고 했다ㅡㅡ)

그래서 고2 때는 힘들었다.

실습하는 나


우리 학교는 매점이 유명했다.

제과제빵 동아리에서 직접 만든 빵을 팔기 때문이었다. 나는 돈 걱정 없이 빵을 먹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랬더니 엄마가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이던 용돈을 끊었다...

(진학반, 취업반, 유학반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진학반에 가서 한양대를 가려고 했지만

공부도 싫고 집도 머니까 야자가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다.)

 

첫 알바는 롯데리아였다. 그때는 일머리가 더럽게 없고 일을 왜 빨리 해야 하는지 조차 몰라서 매니저님이 뭘 시키면 네~하고 느릿느릿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안 잘렸는지 의문이다.

 

다양한 알바를 해보고 싶던 나는 방과 후에 애슐리, 웨딩홀, 고깃집,샌드위치 가게, 떡볶이집, 안경점 등 대부분 고등학생들을 뽑아주는 여러 홀서빙 위주의 알바를 했다. 3년 동안 다행히 일머리도 생기고 일하는 실력이 점점 늘긴 하는 것이었다^_^

 

떡볶이집 사장님과도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고 있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와도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며, 웨딩홀 알바에서 만난 현지언니는 지금 2번째로 친한 친구인데 제일 자주 만나고 여행도 많이 다닌다.

용돈 벌이나 새로운 경험에서 그치지 않고 알바에서 만난 다양한 인연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어 참 소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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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친해진 계기는 좀 웃기다.

현지 (고딩 친구)랑 같이 웨딩홀 알바를 하며 현지언니를 만나게 됐는데, 친구 현지는 꼼꼼하고 난 대충대충 빨리빨리 하는 스타일이었다. 현지언니도 답답한 걸 싫어하고 빨리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근데 어른들은 꼼꼼한 걸 좋아했나 본지 난 잘렸다..ㅋㅋㅋㅋ (언니는 일 오래 했고 잘했음) 잘리고 언니 보러 가고 몇 번 놀러 다니다 보니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돼있었다!

언니와의 에피소드와 추억은 정말 끝도 없지만 다 쓰려면 내 팔이 괴사될 것 같다. 자매냐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나중엔 그냥 자매라고 하고 다녔다.

 

에피소드 딱 하나! 고2때 현지언니를 통해 웨딩홀 과장님이 연결해주신 ㅍㅇㅍㄹㅌ 서빙 알바를 언니랑 같이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재밌었다. 미친 애들처럼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도레미송 더빙 버전이 유행이였는데 행주 빨아오라고 해서 왜 우리한테만 이런거 시켜 하면서도 도레미송 부르면서 신나게 빨았다. 그리고 우리가 귀여움 받으니까 다른 언니들이 질투해서 안좋은 소문을 퍼뜨렸다. 하지만 이런 것도 다 즐거운 추억일 뿐~

현지언니랑!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교에 확인증을 내고 시험을 보러 가야 했는데, 이걸 악용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포토샵으로 조작해서 시험 보러 간다고 뻥치고 학교를 빠지는 것이 거의 유행(?)처럼 돼서 나도 몇 번 빠진 적 있다. 호정이랑 롯데월드나 차이나타운으로 놀러 간 적도 있고, 현지랑 숙대에서 밥 먹고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그 당시엔 양심이 찔렸는데 8년 지난 지금은 아무 문제없고 오히려 추억거리라서 뭐 어때?이다.)


학생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제일 친한 예진이랑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둘이 제주도에 가서 모르는 아저씨께 아빠인척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드린 적도 있다. 

현지언니랑도 둘이 부산 가서 찜질방 체험, 제주도 가서 (나만) 노로바이러스 걸린 적도 있다.

언니랑 부산!
언니랑 제주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우고 1시간만에 화해했다. 지금은 전혀 안싸운다.

 

 

친구가 없는데 근질거려서 혼자 강릉에 간 적도 있다.

삼각대로 혼자 카페 가서 나에게 보내는 엽서도 쓰고 택시 타고 양떼목장 가서 외로움을 느끼다가 감자 먹고 집오기 등..

혼여행하는 고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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